제목 | [한겨레] 낮에는 덮밥집, 밥에는 호프집…시간 쪼개 쓰는 ‘한지붕 두 가게’ | 등록일 | 2017-1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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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덮밥집, 밥에는 호프집…시간 쪼개 쓰는 ‘한지붕 두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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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부지 임대료에 점포 공유형 틈새창업
저녁 술집, 낮엔 덮밥집 등 시간 쪼개 공유
창업자와 점포주 연결해 주는 업체도 성황
“패자부활 없는 자영업에 새 모델로 정착”
이영수(27)씨는 지난달 30일 초등학생 시절부터 꿈꿨던 ‘내 식당’을 열었다. 위치는 무려 서울 강남구 삼성동 '금싸라기' 상가 1층이다. 이씨가 창업에 들인 비용은 모두 합쳐 1500만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임대료가 치솟는 요즘, 어떻게 이런 마법 같은 일이 가능했을까? 비밀은 바로 ‘점포 공유’였다. 이씨는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30분까지만 덮밥을 판다. 낮에는 내내 닫혀있다가 저녁 6시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호프집이 점심시간에만 반짝 이씨의 덮밥집 ‘한끼'로 변신하는 셈이다. 이씨는 “10년은 더 걸릴 줄 알았던 창업이 점포 공유 덕에 두 달 만에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이씨는 하루 3시간짜리 ‘쪼개기’ 사업을 통해 풀타임 영업을 위한 자본금을 마련할 작정이다.
자영업자들이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위해 시간대를 나누어 가게를 나눠쓰는 ‘점포 공유’ 전략으로 틈새 창업에 나서고 있다. 한 공간을 복수의 가게가 나눠쓰는 ‘샵인샵’ 방식에서 더 나아가, 영업시간을 쪼개 쓰는 방법으로 임대료 상승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김동재(33)씨도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술집에 카페 ‘템퍼커피'를 열었다. 그는 낮시간을 빌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영업한다. 간판을 바꿔달 수는 없지만, 카페 로고가 그려진 입간판을 세워두거나 포스터를 붙여놓는 방식으로 손님들을 모은다. 그는 “카페시장이 워낙 불황이라 큰돈을 투자해도 이익이 많이 안 난다. 내 공간이 아니라 모든 걸 다 해볼 수 없지만, 커피를 만드는 일이 너무 재밌어 디저트 메뉴 등 시도하고 싶은 일이 계속 늘어난다”고 말했다.
낮과 밤이 아니라 요일별로 가게를 나눠쓰는 곳도 있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프로젝트 하다'는 평일 낮에는 디자이너의 작업실로 쓰이고 평일 저녁과 주말에는 요일마다 다른 사람에게 공유된다. 매주 월요일 저녁에는 일본식 주점이, 매주 토요일 저녁에는 프랑스 가정식집이 열리는 식이다.
아직 생소한 영업 형태인 공유 매장을 구하는 창업자들은 시간대와 업종을 맞춰 매물과 창업자를 연결해주는 업체를 통해 매장을 얻는 경우가 많다. 원래 영업하던 가게 업주가 새 임차인과 ‘인센티브 매니저’ 계약을 체결해 틈새 창업을 맡기고 대신 매출액의 일정 부분을 지급받는 식이다. 예를 들어, 창업자가 가게를 공유하는 시간 안에 500만원의 수익을 냈다면 임대료를 지불하듯 200만원을 원래 가게 주인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300만원은 인센티브 명목으로 가져가는 식이다. 창업자는 저렴하게 가게를 얻고 점포 주인은 앉아서 추가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공유 시간이나 가게 위치에 따라 달라지지만 점포 공유 월세는 보통 가게 전체 월세의 1/3 수준에서 결정된다.
임차인이 가게를 제 3자에게 임대하는 ‘전대차’ 방식은 건물주 입장에서 득은 없으면서 절차가 복잡하고 관리 요소가 늘어나는 일이라 이는 건물주의 허가를 얻기 어렵다. 그러나 인센티브 매니저 고용 형태을 통해서라면, 전대차 방식이 아니더라도 어렵지 않게 공간을 빌려쓸 수 있다. 과거 점포 주인과 창업자가 구두로 약속하고 점포를 공유하다 불필요한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점포 공유 연결 업체에서 공유 계약을 할 경우 변호사를 통해 계약 기간을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계약서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막고 있다.
20년 경력 외식사업가 김경(56)씨는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7년 동안 꾸려온 칼국수 식당을 정리했다. 임대료 부담도 만만찮았거니와, 이제 쉬엄쉬엄 일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월부터 서울 서초구 서초역 근처 호프집을 빌려 평일 점심시간마다 ‘돈가스 뷔페’를 운영하고 있다. 가게 이름도 따로 정해두지 않았지만, 점심시간에 끼니를 해결하려는 직장인들로 늘 북적인다. 이전보다 임대료 부담도 줄었다. 과거 대치동 칼국수 식당은 지하 1층이었음에도 보증금 4천만원에 매달 400만원이 넘는 월세를 지불해야 했지만, 지금은 보증금도 없이 절반 정도의 임대료만 부담하면 된다. 그는 “예전에 내 가게를 가지고 있을 땐 임대료와 영업시간 때문에 항상 마음이 불편했다. 지금은 보증금도 없이 한 달 치 임대료만 선입금하면 장사를 할 수 있어 부담 없이 시작했다”고 말했다.
점포 공유에 관심을 보이는 창업희망자들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점포 공유 연결 업체 마이샵온샵 정병철 대표는 “최근에는 한달 약 40건씩 점포 공유 창업 상담이 들어온다. 경력단절여성이 자녀들 학교 간 후 비는 시간에 장사를 하기 위해 찾아오거나 퇴직자가 프랜차이즈 사업을 한번 실패하고 재기를 꿈꾸며 오는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패자부활전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 점포 공유는 창의적으로 창업 기회를 제공하는 긍정적 사례로 볼 수 있다”며 “점포 공유가 새로운 모델인 만큼, 창업자가 눈물 흘리는 일 없도록 계약 과정을 컨설팅하는 등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지혜 고한솔 기자 godot@hani.co.kr)